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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서

오소서
사랑과 열정이 식어버린 내 심장에
오소서
경쟁하고 높아지려는 시대정신에
오소서
두 동강 난 민족의 땅에
오소서
탐욕의 삽질에 파헤쳐진 강산에
오소서
차별하는 위선된 마음에

오소서 ...

오셔서
당신을 기다리는
연약하고 가난한 백성들이
하늘의 사랑과 정의를
이 땅에 세워 나갈 힘과 용기를 주소서




물고기 뱃속에서 기다림
요나서 2:1-10

어느 날 각하와 주요 각료 고위인사들이 회의에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가던 도중 연쇄 교통사고가 발생, 그들은 긴급히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기자들이 이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왔습니다. 얼마 후 의사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기자들이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의사선생님, 각하는 구할 수 있습니까?” 의사는 찌푸린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각하는 가망이 없습니다.” 기자들이 또 물었습니다. “총리는 어떻습니까?” 의사는 또 고개를 가로저으며 “역시 가망이 없습니다.” 기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물었습니다. “그럼 누구를 구할 수 있습니까?” 의사는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나라는 구할 수 있게 됏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관료들의 죽음이 나라를 구하는 길이라면 그 나라의 국민들은 불행 속에 사는 것일 겁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한 나라의 지도자뿐 아니라 강대국의 지도자가 누구냐에 따라 많은 사람들과 국가들이 어려움에 처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니느웨는 앗수르 제국의 수도였고, 앗수르 제국은 약300년 동안 제국의 통치를 하였습니다. 앗수르제국은 정치적으로 이스라엘을 억압하였고, 경제적으로는 조공을 받으며 이스라엘을 수탈해 갔습니다. 침략과 약탈이 계속되는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의 고통은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당시에 활동했던 선지자 나훔은 앗수르제국의 폭력을 “너는 망한다! 피의 도성! 거짓말과 강포가 가득하며 노략질을 그치지 않는 도성!”(나3:1)이라고 고발합니다. 나훔은 피와 거짓과 거리마다 가득한 폭력, 그치지 않는 노략질의 수도가 앗수르의 니느웨라고 분노합니다.

가장 폭력적이고 잔인한 앗수르제국의 군사들의 발에 이스라엘의 땅은 처참할 정도로 짓밟혔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선지자 요나는 니느웨 성으로 가서 회개할 것을 외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는 변화를 촉구하라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지만 앗수르제국의 악한 역사를 용서할 수 없어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다시스로 가는 도중 요나가 탄 배는 거센 풍랑을 만났습니다. 풍랑을 만나 죽음을 앞에 둔 선원들은 침몰의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배에 탄 사람들 중 신의 진노를 받은 사람이 있는지 제비뽑기를 하였고, 요나는 제비뽑기에 선택되어 바다에 빠트려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 한 마리를 마련하여 두셨다가, 바다에 던져진 요나를 삼키게 하였습니다.

요나는 사흘 밤낮을 자신을 삼킨 큰 물고기 뱃속에서 지냈습니다. 요나의 사흘 밤낮의 시간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 속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마12:39~40)

* 물고기 뱃속에서의 기간은 자신이 새롭게 되고 성숙하는 시간입니다.
   오늘 우리는 2011년 대림절을 맞으며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하는 내용을 살펴보며 요나의 신앙과 내용을 더 깊이 묵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고 이미 새롭게 변화된 나와 우리를 보는 믿음을 가져라

2절 내가 고통스러울 때 주님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님께서 내게 응답하셨습니다. 내가 스올 한가운데서 살려 달라고 외쳤더니, 주님께서 나의 호소를 들어주셨습니다.

요나는 자신이 겪는 고통을 호소하였고 그 외침을 들어주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민족이 제국으로부터 받고 있는 폭력과 착취로 인해 말 할 수 없는 슬픔이 요나에게는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자신조차 죽음의 한 가운데서 두려움에 싸여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는 현실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아무 때나 살려달라고 외치지 않습니다. 극도로 두려움에 싸이거나 공포를 느낄 때 외마디가 ‘살려주세요’입니다. 요나는 자신과 민족이 받는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 소리를 주님께서 들어주셨다고 고백합니다. 뿐만 아니라 요나는 자신과 민족이 겪고 있는 고통이 다른 누구에게서 온 것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고백합니다.

3절, 주님께서 나를 바다 한가운데, 깊음 속으로 던지셨으므로, 큰 물결이 나를 에워싸고, 주님이 파도와 큰 물결이 내 위에 넘쳤습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어떤 큰 불행이 찾아왔을 때 타인에게서 먼저 원인을 찾습니다. 그리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증오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고 증오하게 되면 남는 건 미움과 증오로부터 폭력이 나타날 뿐입니다. 오래된 책이지만 사무엘 헌팅턴은 이를 ‘문명의 충돌’로 보았습니다. 그는 이슬람문명과 기독교문명의 충돌로 많은 갈등이 있을 것이라 보았습니다. 이를 충실하게 따른 기독교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지금도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죽음의 전쟁도 마다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떠한 문제를 자신들 내부에서 찾기보다 외부에서 찾고 서로에게 문제가 있다고 결론지으며 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까지 해치고 있습니다.

요나는 자신과 민족, 앗수르제국의 상황을 하나님께서 던지셨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고통과 고난, 저질러지고 있는 세상의 죄악들을 하나님의 섭리로 고백한다는 것은 정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시험하지도 죄악을 짓게 하지도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고백은 무엇입니까? 모든 고난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받아들이는 고백과 자세는 자신이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한 수긍이고 인정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는 믿음은 어떠한 문제와 갈등 속에서 자신을 먼저 성찰하고 자기 마음의 변화를 향해 나가는 첫걸음입니다.

  장자는 제물론(齊物論)에서 “아침 저녁으로 마음이 변하는 것을 보면, 역시 무엇인가가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리라. ..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바깥 사물이 존재하지 않으면, 자기라고 하는 의식은 생겨나지 않는다. 따라서 마음의 변화란 바깥 사물과 자기와의 교섭에 의해 자기 내부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 말합니다. 세상의 변화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고 자신의 마음의 변화 또한 바깥 사물과 자가와의 만남에 의해 자신의 내부에서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또한 장자는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보고 지각을 초월한 “참다운 주재자의 존재를 전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장자는 우리 몸의 주재자를 생각하며 그 모든 장기와 마음이 서로 하나의 통일을 이루고 있다고 했습니다. 장자는 심신의 주재자를 인정하고 모든 상황의 섭리를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변화는 시작한다고 통찰했습니다.

욥은 자신이 겪는 현실에서 하나님을 직접 눈으로 뵙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욥 42:5]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

욥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현존과 자신의 현실을 가장 뚜렷하게 보면서 이미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는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고통 속에 있는 욥의 현실이 아무리 힘겨운 상황일지라도 욥은 이미 새로운 피조물로 존재하는 자신을 자각했던 것입니다. 욥의 믿음대로 하나님께서는 고통 속에 있는 욥을 인정하셨고 그의 인내와 정당함을 세워주셨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하기를 ‘[고후 5: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나와 사회, 민족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그 안에서 이미 새롭게 변화된 모습, 새로운 존재로서의 나와 우리를 바라보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 변화에서 성장하는 삶으로 나가라.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밤낮을 지내면서 기도하는 요나는 자신의 고통스런 현실을 인정하면서 다시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앞에 나갈 것을 다짐합니다.

4절 내가 주님께 아뢰기를 ‘주님의 눈앞에서 쫓겨났어도, 내가 반드시 주님 계신 성전을 다시 바라보겠습니다.’

요나는 5,6절에 자신은 이미 영혼까지 물이 둘렀고 깊음이 자신을 에워쌌고, 바다풀이 자신의 머리를 휘감았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이미 땅 속의 가장 밑바닥까지 자신은 내려갔고 땅이 빗장을 질러 가두어 놓은 것 같은 현실에 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요나가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보는 것에서만 멈추었다면 요나라는 인물은 물고기 뱃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우리에게 알려 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6, 7절에서 요나는 현실 너머의 하나님의 구원과 섭리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말합니다.

“주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 그 구덩이 속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었습니다. 7 내 목숨이 힘없이 꺼져 갈 때에, 내가 주님을 기억하였더니, 나의 기도가 주님께 이르렀으며, 주님계신 성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요나의 믿음입니다. 요나의 현실은 아직 물고기 뱃속입니다.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오로지 요나의 마음이 변한 것입니다. 믿음의 눈을 뜬 요나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고 있습니다. 요나는 불빛 하나 없는 물고기 뱃속에 있는 자신과 그와 처지가 같은 민족의 현실을 앞에 두고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를 고대하고 기다리며 이미 이루어졌다고 고백해 내고 있습니다. 요나는 자신의 기도를 이미 들어주신 하나님, 그 일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에 의심 없이 다가갑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으로 족하다’(마6:34)

그 날 그 날의 괴로움이 있거든 아무것도 누구도 탓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맞아들이며 담대하게 자신의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현실의 벽이 아무리 높고 거칠다 하여도 내일도 그 벽이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오늘 최선을 다해 그 벽을 허물고 넘어갈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 날의 괴로움을 겪으며 이겨 낼 수 있는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기억하고 찾는 이들을 멀리 하지 않으시고 가까이 하시며 내일의 평안을 약속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16:33)

예수께서 이미 세상을 이기시고 평안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용기를 내어 그 평화의 길로 걸어가면 됩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새로운 성장을 향해 나가야 합니다.

성장은 나 혼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 교회는 홀로 존재할 수 없고 반드시 예수 안에서 모든 생명들과 함께 자라갑니다. 우리의 성장은 사랑을 바탕으로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에게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엡 4:15]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살면서,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다다라야 합니다.

요나는 ‘헛된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저립니다. 그러나 나는 감사의 노래를 부르며, 주님께 희생제물을 바치겠습니다. 서원한 것은 무엇이든지 지키겠습니다. 구원은 오직 주님에게서만 옵니다.’(8,9절)라고 기도합니다. 요나의 성장에는 현실을 외면하거나 부정하지 않습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헛된 우상을 따라 살며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도 저버리고 사는 제국의 수도 니느웨 사람들도 직시하면서 자신의 깨달음에 감사의 노래와 헌신을 잊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아직 가야 할 길을 가겠다고 다짐하고 결심합니다. 요나는 ‘구원은 오직 주님에게만 옵니다’라고 노래하며 그 변화와 성장의 시작과 끝이 오직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합니다. 세상의 변화와 성장은 전능하시고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로 온다는 것을 우리는 노래하고 선포하며 모든 생명과 더불어 하나님 앞에 함께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 앞에 나오는 사람들을 결코 외면치 않으시고 받아주시고 자신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현장을 둘러보십시오. 물고기 뱃속과 같은 현실이 우리를 짓누르고 에워싸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흔들리고 있고, 신자유주의경제라는 커튼 뒤의 손들은 전쟁과 착취를 일삼고 있습니다. 북한의 어린아이들은 굶주리고 있고, 우리 사회는 부정과 거짓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모두 헛된 우상들을 따라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살아야하고 어디로 가야 할 길을 알면서도 가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삶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삶에 얼마나 큰 상처와 손해를 끼치는지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 첫째 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요나와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된 우리를 바라보고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과 정의가 필요한 곳에 예수께서 찾아가시기를 기도하며 또한 우리가 작은 예수가 되어 찾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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