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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다 열리라
막7:31~37
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서, 데가볼리 지역 가운데를 지나, 갈릴리 바다에 오셨다. 32 그런데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손을 얹어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33 예수께서 그를 무리로부터 따로 데려가서,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고, 침을 뱉어서,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34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보시고서 탄식하시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에바다” 하셨다. (그것은 열리라는 뜻이다.) 35 그러자 곧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똑바로 하였다. 36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명하셨으나, 말리면 말릴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퍼뜨렸다. 37 사람들이 몹시 놀라서 말하였다. “그가 하시는 일은 모두 훌륭하다. 듣지 못하는 사람도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하신다.”

지난주 화요일 저녁 시간 합정역 근처에서 친구 목사를 만났습니다. 그 친구와는 대학원시절에 만난 10년 지기 친구로 서로의 인생을 이야기하며 때론 충고도 하고, 칭찬도 하며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를 만나 국밥집을 찾아 들어가 식탁에 앉았는데 TV에서 프로야구 중계를 해 주고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프로그램에서는 야구선수들의 실수하는 장면과 명장면을 함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유격수가 실수하는 모습, 중견수가 공을 놓치는 모습 등 크고 작은 실수들을 연달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명장면으로 멋진 다이빙 캐치 볼 하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야구선수들의 실수와 멋진 장면을 보면서 문득 ‘인생은 야구와 같다’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자신의 역할을 잘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 팀을 위해 희생 하는 모습, 실수도 하면서 멋진 경기를 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 야구선수들의 모습에서 한 인생으로 살아가는 제 모습과 교우들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나와 가족, 친구들, 이웃들을 위해 기도하고, 또한 다양한 노력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작지만 예수의 향기를 발하려고 발버둥치는 삶의 모습 속에 때론 실수와 아름다움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사람들이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런 인생의 다양한 모습이 야구경기 안에 있는 것을 보고 열광하는 것 아닌가하는 잠깐의 생각을 합정역 근처 반 지하 국밥집에서 해 보았습니다.

야구와 같은 실수와 명장면이 반복되는 우리의 인생을 되도록 실수를 줄이고 명장면을 많이 남기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은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답을 제시해 줍니다.

예수님께서 두로 지역과 시돈을 거쳐서, 데가볼리 지역 가운데를 지나, 갈릴리 바다에 오셨습니다. 두로와 시돈, 데가볼리 지역은 유대인들이 이방도시라고 부르는,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지역입니다. 그런데 본문 앞부분에서 두로 지역에 사는 악한 귀신 딸을 둔 여자가 예수께 찾아와 고침을 받은 치유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마가가 기록한 목적 중 하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유대 종교나 전통, 규범 속에 살아가는 사람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예수와 제자들이 두로와 시돈, 데가볼리 지역을 돌아 친근한 갈릴리 바다에 다시 오셨을 때 사람들은 귀 먹고 말 더듬는 한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사람들은 예수께서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다를 때와 같이 손을 얹어 치료해 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 사람을 무리로부터 따로 데려가서,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고, 침을 뱉어서, 그의 혀에 손을 대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서 탄식하시며 ‘에바다’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똑바로 하게 되었습니다. ‘에바다’라는 말은 당시에 흔히 쓰는 아람어가 아닌 지역 방언이었습니다. 그래서 마가는 그 뜻이 ‘열리라’라는 의미가 있다고 덧붙여 주었습니다.

예수께서 무리로부터 그 사람을 데리고 가시고, 지역 방언으로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사람은 귀 먹었기에 사람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눈으로 알아들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작은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신을 지켜나가려고 몸부림 쳤을 것입니다.

사실 예수께 귀 먹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온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의 치유기적만을 보고 싶었습니다. 뭔가 짜릿하고 획기적이며 환상적인 사건을 경험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는 마치 하나님께 기도하고 헌신하면 자신의 아이들이 유명한 대학에 들어가고, 사업이 번창하며, 부자가 되고 권력을 가질 것이라는 열망하는 종교인들과 같습니다.

예수께서는 어떠한 기적이 일어나는 소리에 치우쳐 아웅성 치며 간청하는 사람들, 자신이 원하고 듣고 말하고 싶은 것만 외치는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나온 귀먹고 말 못하는 사람은 홀로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는 ‘에바다’ 곧 ‘열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듣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 상황들이 진행되는 장면이 상상되었습니다. 먼저는 사람들 속에서 아무것도 듣고 말하지 못하고 보기만 하던 사람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그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은 하늘을 우러러보고 탄식하는 안타까움과 긍휼입니다. 하나님의 시선과 능력, 자비와 사랑은 하늘과 땅의 모든 소리를 듣고 말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을 향해 있고 그 사람의 듣지 못하는 귀를 열어주시고, 말 못하는 혀를 풀리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을 사람들의 아우성 속에 내버려두지 않고 진리와 생명, 깨달음으로 이끄십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장애를 가진 이의 심정과 그 사람이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예수께서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데리고 가는 순간부터 손가락을 자신의 귀에 넣고, 침을 뱉어서, 자신의 혀에 손을 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는 이 사람의 심정과 그 시선은 어떠했을까요?

귀 먹고 말 못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자신이 가진 장애의 몸에 손도 대지 않고 웅성대던 사람들의 모습과 자신의 장애 있는 몸 부위를 만지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하늘의 그 무엇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자신을 만지시는 예수의 행동을 보면서 자신이 들어야 하고 말해야 하는 인생의 참 소리가 무엇인지 말해야 하는 소리가 무엇인지 예수를 통해 알고 싶은 강한 열망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귀 먹고 말 못하는 사람은 예수의 말과 그의 말을 하고 싶은 자신을 예수의 손에 맡겼습니다. 예수께 자신의 온 몸을 맡긴 이 사람은 듣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이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 그를 데려온 사람들은 이 치유사건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한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듣고 싶고 말하고 싶은 것만을 쫓는 것을 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들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 보면 우리 인생은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고 잘하려는 마음을 가지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많이 듣고,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자신의 장점을 더 많이 알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결국 그러한 욕심으로 인해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들어야하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말하지도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평화는 대립과 반목, 서로의 정죄가 아닌 용서와 화해, 신뢰와 존경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자본의 폭력이 회사와 사회, 교육과 정치, 종교 안에 도사리고 있다는 외치는 소리도 듣지 못합니다. 야구경기장에 있는 선수가 야구장을 가득 메우고 웅성거리는 팬들의 소리가 아무리 크게 들려도 자신의 경기에만 집중하면 그 많은 소리가 도대체 무슨 소린지 들리지 않습니다. 그렇듯 사랑과 정의, 평화의 소리에 귀먹은 사람은 온통 자신의 욕심에 치우쳐 온 우주를 가득 채운 평화와 생명의 소리를 전혀 듣지를 못합니다.

ex)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오정 시리즈가 나온 이유
어느 날 사오정이 소원의 동굴에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는 의문문으로 말해야 소원이 이루어지는 동굴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부자가 되고 싶니?’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걸 듣고도 귀담아 듣지 못한 사오정은 ‘부자가 되고 싶어’ ‘똑똑해 지고 싶어’ ‘멋진 자동차가 가지고 싶어’ 하며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자 사오정은 ‘너 귀 먹었냐?’하고 말해 버렸습니다. 그 이후로 자신이 듣고 싶은 대로만 듣는 사오정 시리즈가 나왔다고 합니다.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말하는 사오정의 모습은 어찌 보면 세상에서 귀담아 들어야 할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우리들, 우리 사회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상대의 소리를 귀담아 듣기보다 상대방이 내 소리를 먼저 들어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제대로 듣지 못합니다. 자신의 상황과 지식에서, 때론 변명으로 자신이 듣고 싶은 소리만 듣습니다. 그래서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로 살아가며 아름답지 못한 말들을 하곤 합니다.

우리는 ‘에바다’ 곧 우리의 귀와 입이 열리려면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말씀과 삶의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강한 열망을 가져야 합니다. 나의 몸과 가족, 친구와 이웃들, 온 세상의 생명체들의 소리를 타고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TV, 영화, 광고 속, 사람들이 만나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어떤 소리입니까? 무엇이 들리십니까? 귀 먹고 말 못하는 사람이 듣고 말하는 기적을 원하고 간청하는 소리가 들리십니까? 인간과 온 생명체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 정의의 몸짓과 소리가 들리십니까?

세상의 모든 동물들이 뱀을 앞에 놓고 흉을 보았습니다. “사자는 먹이를 쓰러뜨리고 먹는다. 늑대는 먹이를 찢어 먹는다. 그런데 뱀아, 너는 먹이를 통째로 삼키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뱀은, “나는 남을 헐뜯는 사람보다는 아직 낫다고 생각한다. 혓바닥으로 상대를 상처 입히지 않으니 말이다”라고 대꾸했습니다.  

배고픈 사자처럼 으르렁대며 달려드는 자본과 권력의 소리는 교회나 교회 밖이나 할 것 없이 사람들의 생명과 생태계의 생명체들의 몸과 영혼을 갈가리 찢어놓습니다. 우리는 그 가운데서 세미하면서도 섬세하게 아픈 곳을 만지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삶과 말씀을 듣고 말하며 따라가야 합니다.

군중과 일상 속에서 예수님과 홀로 서 있으십시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탄식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말하기 원하는 간절한 시선으로 바라보십시오. 예수께서 ‘에바다’ ‘열리라’하실 것입니다. 하늘에 열리고 땅과 사람들, 생명체들을 향해 모든 귀와 입이 눈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온 몸으로 예수님을 체험하며 한 주간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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