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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한 생명의 소리
왕상 19:9-18

연못에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는 어떤 행동과 말을 할 때 주의 깊게 상대를 배려하며 하여야한다는 교훈적인 말입니다.

  사람은 살면서 자신의 작은 말도 누군가 듣고 있으며 그 말로 인해 기쁨도 얻고 상처도 받는 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비록 짐승이나 식물 앞에서도 그들에 관련된 말을 할 때 그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며 말하는 마음과 태도가 중요합니다. 또한 주변의 말을 세심하게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의 갈등과 분쟁은 상대의 마음에서 원하고 말하는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정부의 4대강 개발 사업에 대한 전 국민 반대 집회가 광화문에서 있었습니다. 반대집회 티켓의 한 구절은 ‘흘러라 강물아 들어라 청와대’였습니다. 정부건 개인이건 자신에게 들려오는 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함은 당연한 것임에도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엘리야가 들었던 세미하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에 대한 말씀입니다.

당시 엘리야는 이스라엘 왕 아합 왕과 적대 관계에 놓여 있는 선지자였습니다. 아합 왕은 열왕기를 기록한 저자의 눈에 그 어떤 왕보다 하나님의 눈에 거스르는 왕으로 묘사됩니다. 16장 30절 이하에 ‘그는 사마리아에 바알 산당을 짓고 그 안에 바알 제단을 세웠다. 또 아합은 아세라 목상도 만들었다. 그는 선대의 어느 이스라엘 왕들보다도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의 속을 더욱 썩여드렸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아합 왕은 히엘을 시켜 여호수아 시대에 무너뜨리고 다시는 세우지 말라는 여리고 성을 재건하였고 백성들의 땅과 재산을 몰수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고 바알과 아세라의 정신을 따라 행해지는 통치 행위였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떠나 바알과 아세라의 문화와 가치관으로 살아가며 백성의 고통에는 아랑곳 하지 않는 아합 왕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선포하며 개혁을 꿈꾸었다.
엘리야와 아합의 갈등 관계의 정도는 18장 16-18절에 적나라하게 나온다.
‘아합은 엘리야를 보자 말을 건넸다. “그대가 이스라엘을 망치는 장본인인가?”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내가 이스라엘을 망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는 사람은 바로 왕 자신과 왕의 가문입니다. 왕께서는 야훼의 계명을 버리고 바알을 받들어 섬겼습니다”
아합 왕에게 거침없는 말을 하는 엘리야의 모습은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정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가늠하게 합니다.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그들의 예언자 팔백오십명을 갈멜산으로 모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누가 참 신인지 가려내고는 거짓으로 얼룩진 바알과 아세라 예언자들을 기손 개울가에서 죽입니다. 이로 인해 이세벨은 자신의 신복과 같은 바알과 아세라 예언자들의 죽음에 격노하여 엘리야를 잡아 들여 죽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엘리야는 이세벨의 칼을 피하여 하나님의 산으로 도피하였습니다.

엘리야는 도피하는 도중 광야에서 목이 타 죽을 것 같은 고비도 넘깁니다. 다행히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로뎀 나무 아래서 쉼을 얻고 물과 음식도 섭취하고 사십일 밤낮을 달려 하나님의 산으로 도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산에 올라 어느 굴에 들어가 그 날 밤을 지내는데 갑자기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엘리야야 네가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갑자기 들린 하나님의 음성은 위로와 격려의 소리도 아니었습니다. 모세에게처럼 함께하리라고 능력의 지팡이를 들려주겠다는 약속도 아니었습니다. 기껏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온 힘과 뜻을 다해 달려왔건만 하나님께서는 “네가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라니 엘리야가 듣기에는 그리 위로도 도전도 안 되는 서운한 말씀이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즉각 대답합니다.

“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신과 맺은 계약을 저버리는 것을 보고 만군의 하느님 야훼를 생각하여 가슴에 불이 붙고 있습니다. 이 백성은 당신의 제단을 헐었을 뿐 아니라 당신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 죽였습니다. 이제 예언자라고는 저 하나 남았는데 그들이 저마저 죽이려고 찾고 있습니다”(10절)

엘리야는 죽을 고비 넘겨가며 하나님의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온전하게 전해지고 실천되어지길 바라며 달려온 지친 인생인데 “엘리야야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라니 엘리야는 하나님의 물음에 서운하여 그 의중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엘리야는 ‘나보고 더 이상 어찌하라는 말씀입니까? 더 이상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이미 수많은 하나님의 선지자, 예언자들이 이세벨의 칼에 죽었고 이젠 자신마저 풍전등화와 같은 처지에 놓였고 이젠 기대할 것도 바랄 것도 없다는 자포자기의 언성이 섞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엘리야에게 다시금 말씀하십니다.

“앞으로 나가서 야훼 앞에 있는 산 위에 서 있거라”(11절)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자신 앞에 초대를 하고 계십니다. 세상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와 사랑이 깨어지고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한 영혼을 불러 자신의 마음을 나타내십니다. 세상의 역사가 하나님의 법과 역행하는 것과 같아 보일 지라도 하나님의 역사는 소리 없이 그러나 온 지면에 충만하여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낙심한 엘리야를 자신 앞에 초대하신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궁핍함으로 숨고 싶고 안주하고 싶은 엘리야에게 “앞으로 나가서”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눈으로 보는 것이 모두 보는 것이 아니고 생각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치고 하나님 앞에 있는 산 위에 서 있을 것을 엘리야에게 주문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있는 산 위에 선 엘리야의 가슴은 어떠했을까요?
떨렸을까요? 서운한 마음 아직도 가시지 않았을까요? 하나님께서 어떠한 말씀을 하실까 궁금해 하며 기대에 찬 마음이었을까요? 엘리야는 하나님 앞에 있는 산 위에 섰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지나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지나가실 때 크고 강한 바람 한 줄기가 일어 산을 뒤흔들고 야훼 앞에 있는 바위를 산산조각 내었습니다.
산을 뒤흔들고 바위를 산산 조각 내는 바람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하여 보였겠습니까? 지금 엘리야게는 거대한 산처럼 변함이 없을 것 같은 아합 왕과 이세벨의 권세를 뒤흔들고 그들의 굳건한 바위들을 산산조각 내 버리는 여호와의 능력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자신을 죽이겠다고 병사들을 보내어 쫓아오는 현실을 막아줄 하나님의 능력이 왜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을 모조리 찾아 죽이는 암흑과 같은 상황을 벗어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하심!
아합 왕에게 독설을 퍼 부으며 회개할 것을 외치는 엘리야의 말에 동의해 줄 하나님의 능력이 바로 엘리야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선조들을 노예의 속박에서 구속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왜 기대하지 않겠습니까?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되고 나일강 상류에 지팡이를 넣으니 물이 핏물이 되고 공중의 먼지를 치니 이가 되고 하늘이 어두워지며 우박이 내리고 애굽의 모든 장자를 죽여 선조들을 출애굽 시킨 하나님이 능력이 간절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강력한 능력의 바람 가운데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크고 강한 바람이 지나간 다음에 지진이 일어났지만, 그 가운데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고,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아니하였습니다.

불은 엘리야의 마음입니다. 엘리야의 마음에는 민족을 향한 불과 같은 열정과 기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자신의 틀에 갇힌 열정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나만 남았습니다라는 열정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12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은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완전하게 임할 줄 알았습니다. 돌을 떡으로 만들어 사람들을 먹이고 세상의 권세자들을 발등상 아래에 놓고 하늘의 권세를 이룰 줄 확신했습니다. 제자 베드로는 죽은 자를 살리고 떡 두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고 병든자들을 고치는 예수님의 능력을 보고 그를 따르며 죽기까지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변화를 가져올 자신의 스승이 감람산에서 무력하게 잡혀 갈 때는 용납이 안 되어 칼을 빼어 휘둘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세상의 폭력과 사망의 권세에 맞서 싸워 승리할 것을 기대하며 베드로는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러나 열정으로 가득찬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칼을 집에 넣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칼로 선 자는 칼로 망하리라’는 엄중한 경고만을 들었을 뿐입니다.

엘리야는 크고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보지 못했습니다. 엘리야는 실망했을까! 아니면 그 어떠한 깨달음을 얻었을까!

그 모든 것이 지난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바람과 지진과 불과 같은 인간의 소리, 인간의 행위가 지나고 난 후 하나님의 조용한 음성을 듣습니다. 엘리야는 자신의 겉옷을 가지고 얼굴을 가리고 굴에서 나가 입구에 서 있습니다. 엘리야는 이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미처 깨닫지 못한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선 것입니다. 엘리야가 민족을 위해 자신만의 강한 열정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는 들리지 않던 하나님의 음성을 자신의 모든 것을 모두 내려놓았을 때 듣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지나고 세미한 음성을 듣게 된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임재하여 다시 말씀하십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13절)
크고 강한 바람과 지진, 불이 있기 전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신 말씀과 똑 같은 말씀입니다. 엘리야 또한 동일한 대답을 합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히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14절)

말고의 귀를 자르고 예수님의 칼을 집에 꽂으라는 말씀을 듣고 칼을 칼집에 꽂은 베드로의 마음은 더 이상 분노와 복수는 사라졌습니다. 인간의 삶 속에 수 없는 부정과 부패를 보고 폭력을 봅니다. 이는 이로 갚고 눈은 눈으로 갚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평화롭기만 한 여린 청년을 포학한 병정들의 손에 아무런 저항도 없이 어찌 넘겨줄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어린 자녀가 적들의 손아래 고통 받는 모습을 어찌 보고만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칼을 칼집에 꽂은 베드로처럼 엘리야의 심중에도 변화가 일었습니다. 상황은 변한 게 없지만 이제 엘리야의 마음과 태도와 사랑에 변화가 왔습니다.

“하나님 저는 여리고 작습니다. 포학한 이들이 찌르면 아프고 아파 피가 납니다. 이런 아픔을 언제까지 견뎌야 합니까?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이 포학한 손길에 죽임을 당해 저만 남았습니다. 제가 어찌해야 합니까. 제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당신의 뜻을 보여 주옵소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암흑과 같은 현실을 이길 수 있는 길을 모색해 주셨습니다. 시대를 개혁하고 변화 시켜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을 세우도록 하였습니다. 아람의 왕으로 하사엘을 세우게 하였고, 이스라엘 왕으로 예후에게 기름을 붓게 했으며 자신의 후계자로 엘리사를 선지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이제 자신만을 바라보던 시선을 다른 사명자들에게 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혼자만 지고 가려했던 십자가를 이제 나누어 질 수 있는 여유와 연합하고 연대 할 수 있는 넉넉한 영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합 왕의 거칠고 포학한 정세아래 이제 하나님 나라의 샬롬을 향해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고 실천하게 된 것입니다. 엘리야는 이제 자신의 열정을 함께 나눌 사람들을 보게 되었고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사람 칠천을 남겨 놓았습니다. 칠천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충분한 사람들을 남겨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도처에 남겨진 하나님의 사람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람들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받은 하나님의 소명을 온전하게 감당하고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엘리야가 들었던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내면에 크고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이 있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엘리야와 같은 처음 열정을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은 들을 수 없습니다. 오직 자신만 하나님 앞에 남아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생각하고 사명을 감당하려 한다면 쉽게 지치고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갈등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 안에 바람과 지진과 불이 지나가기를 기다릴 수 있을까요?

헨리 나우웬은 이렇게 권면해 주고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 [사랑의 세미한 소리] 중 / 인터넷 스크랩
[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 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 봐" 하고 말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라고 다른 소리가 말합니다.
어떤 소리는 또한 "너를 진정으로 걱정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소리는 "성공도 하고, 인기도 끌고, 권력도 잡아야만 해" 하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끄러운 소리들 밑에는,
"너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야. 나의 은총이 네게 있어" 라고
말하는 작고 세미한 소리가 있습니다.
이 소리야말로 무엇보다도 우리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할 소리입니다.

그러나 이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
즉 고독과 침묵 그리고 듣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우리들을
"나의 사랑하는 자여" 하고 부르시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

기도는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를 듣게 합니다. 기도하며 마음을 하나님께 돌리고 열어 놓을 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생명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하나님의 산에 올라 무릎 꿇어 땅에 엎드릴 때 땅 아래 생명의 노래 소리와 생명들이 연대하는 소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땅에 자신의 생명들을 살게 하셨습니다. 마치 아합 왕의 폭정 아래 칠천 명을 남겨 놓았듯이 오늘 우리의 삶의 중심에 하나님께 생명을 받아 호흡하며 노래하며 춤추는 생명들을 남겨 두셨습니다.

시커먼 매연을 뿜어내어 그늘진 밑, 자신의 이익과 명예와 권력을 위해 아우성치는 소리 뒤, 지구화-세계화라는 화려한 자본의 조명으로 드리워진 그림자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소리를 들려주시는데 곧 연대와 연합입니다. 산과 들에 우리들의 거리에 바람에 부딪치는 나무 가지 소리와 풀들의 사각거리를 소리,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소리, 온 생명의 소리들이 있다. 들풀 사이를 헤치며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벌레들의 기어 다니는 생명의 소리를 들으십시요. 하나님의 세미한 생명의 소리는 그 소리와 함께 임재 하고 있으며 그들과 연합하라 하십니다.

우리는 남과 북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어야 하고 그 음성을 따라 평화와 화합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서로를 세워주며 높여주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매 순간 하나님께서 임재 하여 소리 나는 세미한 생명의 소리를 들으며 행복해하고 함께 연합하고 연대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살아내는 귀한 삶이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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