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2532 추천 수 0 댓글 0
Atachment
첨부파일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우리를 향하여 서 계시는 하나님을 보라

창 18:1-15


헤브론에 가면 본문에 나오는 마르레의 상수리나무라 불리는 고목이 있다합니다. 이 나무는 러시아 정교회 수도원의 경내에 있는 약 5000년 된 고목인데, 사람들은 이 고목을 ‘아브라함의 상수리나무’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라고 부릅니다. 5000년의 세월을 견디며 사라지지 않고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100년도 못사는 인생은 경외감이 들 정도입니다. 더군다나 인간으로 모습으로 현현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 했던 곳이고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숨결이 있다고 생각하면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상수리나무는 중동의 뜨거운 기후에 몸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을 제공하여줍니다. 구약성서의 많은 부분을 살펴보면 상수리나무 그늘에서 제사를 지내고 사랑을 나누고, 왕의 제관식도 하며 다양한 사건과 행사들이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상수리나무는 때로는 우상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이스라엘 민족 자체를 비유하여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인생에서도 상수리나무 밑에서의 한 사건을 빼 놓을 수 없는데 오늘 본문의 사건을을 시간의 흐름에 맞춰 세 부분으로 묵상해 보았습니다.

* 우리를 향하여 서 계시며 바라보시는 하나님
아브라함은 상수리나무 숲 근처에 천막을 치고 살며 그곳을 예배의 장소로 모임 장소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창13:18을 보면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고 전해 줍니다. 그리고 본문이 전해 주듯이 어느 한창 더운 대낮에 천막 문어귀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웬 세 사람이 자신을 보고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세 사람은 언제부터인가 아브라함을 향해 서 있었는데 두 명은 천사이고 한 명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이 누구인지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정황으로 보아서 그들이 하늘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가 알고 있었다고 보여 집니다. 아브라함은 언제부터인가 자신을 보며 서 있던 사람들을 보자마자 천막 문에서 뛰어나가 맞으며 땅에 엎드려 간청을 드렸습니다.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십시오. 물을 길어 올 터이니 발을 씻으시고 나무 밑에서 좀 쉬십시오. 떡도 가져올 터이니 잡수시고 피곤을 푸신 뒤에 길을 떠나십시오” 세 사람은 “아 그렇게 하여 주시겠소? 당신의 말대로 해 주십시오”라며 아브라함의 간청을 수락하였습니다.

이 부분에서 두 가지 궁금한 생각이 듭니다. 먼저는 하나님과 천사들은 언제부터 아브라함을 보고 서 계셨을까이고, 두 번째는 상수리나무 그늘 밑 천막 문어귀에서 아브라함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입니다. 두 번째 궁금증부터 생각해 보면 아브라함은 낮잠만 자고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육체노동의 쉼에 잠은 필수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늘에 앉아 육체와 영혼의 안식을 누리며 하나님을 묵상하며 자신에게 현현하여 약속하신 말씀을 되새기며 기도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은 전능한 하나님이니 자신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 이미 경수가 끊어진 아내 사라를 통해 아들 이삭이 태어날 것이고 그와 언약을 세우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와 그 목적을 묵상하며 쉼을 얻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지내온 인생의 과정 속에서 일어난 많은 일들을 뒤돌아보며 함께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였습니다. 뜨거운 한 낮의 나무그늘 아래 아브라함은 신앙의 경건한 모습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부터 아브라함을 보며 서 계셨을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무소부재의 하나님으로 부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장소와 시간에 상관없이 존재하는 분입니다. 본문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현현하여 나타나셨지만 그분의 속성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택하신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 자신의 자녀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함께 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신32: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하나님의 현현은 ‘임마누엘’입니다. 예수께서 성육신 하셨을 때 그의 이름 또한 ‘임마누엘’ ,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임마누엘께서는 아브라함을 향해 서 계셨습니다. 그렇듯이 자신의 백성을 향해 서 계시며 자신을 영접하는 순간을 기다리고 계시며 함께 먹고 마시며 즐기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하시며 자신과 함께 쉼과 안식을 누리길 바라십니다. 자신의 백성을 보고 서 계시는 하나님의 눈빛은 부모가 자녀를 바라보는 마음 이상의 사랑이 있습니다. 늑대들의 소굴에서 어린 양과 같이 살아가는 자신의 백성들을 향해서 서 계시며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자녀들의 안전과 평안과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한 삶에 대한 희망과 그렇게 해 주고 싶은 열정이 가득합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을 생각해 봅시다. 경쟁을 부추기고 주류에 합류하지 않으면 낙오시키는 냉정한 세상,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이 속이고 죽이는 잔인함과 폭력들이 난무한 세상을 경험합니다. 우리들의 삶은 수고와 무거운 짐으로 견딜 수가 없어 보입니다. 늘어나는 우울증 환자들, 방치되는 아이들, 매 맞는 노인들, 노동의 현장에서 추방되는 사람들, 이주민들, 자살을 하는 많은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힘에 겨워 보이기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수고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예수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그랬듯이 자신을 향해 바라보고 개인과 가족, 공동체와 민족과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나오기를 바라십니다.
누군가 쉼이 필요하거나 공동체가 어려움에 빠졌거나 민족이 분단되고 폭력의 상황에 갈등하고 있다면 자신을 향하여 서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을 자신의 자리에 모셔야 합니다. 개인은 자신의 이기심을 버려야 하고, 집단과 국가들은 자신의 이해타산을 따지지 말고 자신을 아낌없이 주신 예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 자신을 헌신하며 하나님을 모신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천사들을 영접하겠다고 간청하고 나서 수락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천막으로 들어가 사라에게 고운 밀가루 세말을 내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고 하고 소떼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살이 연하고 맛있어 보이는 송아지를 끌어다 종에게 맡겨 빨리 잡아서 요리하게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최상의 송아지 요리를 차려놓고 손님들을 대접하고 자신은 그 옆에서 시중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모신다는 것, 하나님을 대접하고 그분께 시중든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시중든다는 것은 자신을 나타내지 않는 것입니다. 시간과 물질, 자신의 감정과 이성을 모두 부인하며 예수의 정신인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향해 서 계신 하나님을 보고 영접하고 시중들며 자신을 온전하게 내어 놓았습니다.

ex) 소금으로 만들어진 인형
‘소금으로 만들어진 인형’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소금으로 만들어진 인형은 육지에서 출발해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수만 리 길을 돌아다닌 끝에 마침내 드넓은 바다에 이르렀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것이지만 늘상 보아온 것 같은 바다, 야릇하게 출렁이는 그 커다란 물체를 보고 ‘소금으로 만들어진 인형’은 황홀한 느낌에 사로잡혔습니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인형이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바다가 말했습니다. “나? 글쎄.... 그러지 말고 이리로 들어와봐”. 인형은 바다의 말을 듣고 “그래?” 인형은 더욱 궁금해 졌습니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첨벙첨벙 바닷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바닷물 속으로 들어갈 수록 몸이 작아지더니, ‘소금으로 만들어진 인형’은 마침내 아주 작은 알갱이 하나로 남았습니다.
그 마지막 알갱이마저 녹아 없어지기 직전, ‘소금으로 만들어진 인형’은 경탄 해하며 외쳤습니다. “아, 난 이제야 내가 누군인지 알겠어!”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천사들을 시중들면서 자신의 모습을 온전하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한 이유를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18:19) 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 곧 믿음의 사람들의 본질은 하나님의 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에 있습니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는 너무나도 명백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생각하고 말하고 실천하며 살아가야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여야 합니다. 마치 소금 인형이 바다와 하나가 되어 바다가 된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온 몸과 삶은 예수라는 바다에 녹아 없어져 자신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예수의 바다로 있어야 합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말한 ‘롬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라는 것과 같습니다.

* 아브라함의 마음을 채워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영접하고 시중들던 아브라함에게 묻습니다.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사라를 찾으시는 말씀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믿음의 후손에 대해 감격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사라의 몸이 아이를 가질 것을 희망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기대와 기쁨, 믿음의 마음으로 대답합니다. ‘장막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이미 경수가 다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은 100세요 사라는 90세입니다. 도저히 아이를 기대할 수 없었지만 아브라함은 이미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었습니다. 처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는 ‘그런 소리 마시고 이스마엘이나마 복을 받았으면 합니다’라고 말하던 아브라함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습니다. 90세 된 아내 사라를 찾는 하나님의 의도를 알고 있는 아브라함은 자신의 이성과 감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하신 대로 하실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아내 사라가 장막에 있다는 아브라함의 말을 들은 하나님께서는 1년 후면 사라에게 반드시 아들이 있을 것이라 하십니다.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10)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장막 뒤에서 듣고 있던 사라는 자신의 현실을 보며 웃었습니다. ‘내가 이미 노쇠하였고 남편도 나도 늙었는데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12)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향해서 ‘왜 웃으며 늙었다고 아이를 낳지 못할 것이라 하느랴’고 물으며 ‘여호와께는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다시 한번 자신의 의지를 확인시켜 줍니다. 사라는 자신의 마음을 들키고 두려워 거짓말로 ‘내가 웃지 아니하였습니다’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니라 네가 웃었다’고 말씀하시며 사라에게 확신을 가질 것을 촉구합니다. 사라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의심했다기 보다 자신의 현실에 안주하고 좌절하려는 마음이 강했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따랐던 사라입니다. 그렇지만 이미 자신의 현실은 도저히 회복되거나 치유될 수 없는 깊은 상처와 같다고 생각했기에 아이를 약속한 전능한 하나님의 말씀에 웃음을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현실을 알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지만, 사라가 아브라함처럼 자신을 바라보기를 원하셨고 소망을 버리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사라는 하나님의 격려와 꾸지람이 섞인 말씀을 듣고 1년 후 이삭을 출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향해 서 계시며 자신을 향해 얼굴을 들고 달려 나와 영접하길 기다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영접한 믿음의 사람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부인하며 성령으로 함께 먹고 마시며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여 예수와 같은 사랑으로 섬김의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은 우리의 현실에 도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으로 충만한 내 영혼, 가족, 평화의 세상을 열어가는 민족이 될 것이고 모든 눈물을 서로 닦아주며 나누며 헌신하며 사는 지구공동체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한 주를 사시면서 나무 그늘에 앉아 기도하시며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뛰쳐나가 영접하시며 함께 먹고 마시며 성령으로 충만하게 사시기를 축원드립니다.

Title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02 주보자료 7월 2일 주보 file 김지만전도사 2017.07.07 1182
501 주보자료 7월 23일 주보 file 김지만전도사 2017.08.22 1235
500 주보자료 7월 16일 주보 file 김지만전도사 2017.07.22 1187
499 말씀자료 7.25 주일말씀 "생명나무가 된 잡초" 타 13:31-32 file 고성기 2010.07.27 2762
» 말씀자료 7.18 주일설교 "우리를 향하여 서 계시는 하나님을 보라" 창18:1-15 file 고성기 2010.07.21 2532
497 주보자료 6월 26일-10월 2일 주보 file 김지만전도사 2016.10.17 1268
496 주보자료 6월 25일 주보 file 김지만전도사 2017.07.07 1130
495 주보자료 6월 18일 주보 file 김지만전도사 2017.07.07 1204
494 주보자료 6월 11일 file 김지만전도사 2017.06.11 1140
493 말씀자료 6.6 온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즐거운 불편 file 고성기 2010.06.07 2246
492 말씀자료 6.27 주일설교 "부림의 지평을 넓혀라" 에스더9:20-32 file 고성기 2010.06.29 3491
491 말씀자료 6.20 주일설교 "생명의 몸무게는 동일하다" 마5:43-48 file 고성기 2010.06.23 2253
490 말씀자료 6.13 주일설교 "우주적 몸으로 살라" 요1:1-5 file 고성기 2010.06.23 2212
489 주보자료 5월 주보 file 김지만전도사 2017.06.11 1155
488 말씀자료 5.23 주일말씀 "방주 안의 생명공동체" file 고성기 2010.05.27 2275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37 Next ›
/ 37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