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의 추억, 그리고 신화의 주인공
[이랜드 홍콩통신](1) 홍콩원정단과 길을 떠나며
오도엽(작가) / 2008년04월29일 11시55분
1979년 YH무역 여성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쫓겨날 때 가장 먼저 달려갔던 사람이 자유실천문인협회 고은 시인이었다. 신민당사에서 농성하던 스물한 살 김경숙은 죽었다. 고은 시인은 구속이 되었다. 가끔 시인이네, 작가네, 하며 글을 쓰는 내가 부끄럽다. 4월 30일부터는 홍콩에서 글을 보낸다. 이랜드 노동자가 삼보일배를 할 때는 무릎 보호대가 되어 지켜볼 것이고, 뉴코아 노동자가 단식을 할 때는 한 줄기 물이 되어 타는 목마름을 또박또박 받아 적을 것이다. 홍콩에 간 이랜드 뉴코아 노동자들이 외롭지 않게 응원의 댓글이 함께 할 수 있는 자리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연재를 시작하며>
오도엽 작가는 4월 30일, 뉴코아-이랜드 노동자들과 함께 이랜드 홍콩법인 홍콩증시 반대 홍콩원정투쟁을 떠난다. 오도엽 작가는 오는 5월 7일 귀국하기까지 홍콩에서 뉴코아-이랜드 노동자들의 투쟁을 '민중언론 참세상'에 매일 전해올 예정이다. 독자들의 관심 부탁드린다. -<편집자 주>
▲ 뉴코아-이랜드일반노조는 지난 3월, 이랜드 그룹의 홍콩주식상장 대행사인 UBS 서울지사가 위치한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홍콩으로 원정투쟁을 떠나겠다고 밝힌 바 있다./참세상 자료사진
추억
이랜드는 내게 추억으로 남아있다. 고등학교를 들어갈 때 교복자율화 정책이 시행되었다. 수업시간만큼이나 칙칙했던 검정 교복을 중학교 졸업식과 동시에 앨범 속에 묻는 순간, 그 짜릿함이란.
하지만, 교복에서 벗어난 자유는 서민의 자식들에게는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검정 교복에 달았던 이름표 대신 사복에는 ‘메이커’라는 게 필요했다. ‘뱅뱅’대신 ‘방방’을 길거리에서 사야했고, ‘나이키’대신 ‘나이스’를 신어야 했던 좌절감이란.
그 시절 청소년들에게 길거리 표에서 탈출하여, ‘메이커’로 한 발짝 다가서게 한 것이 ‘이랜드’다. 이랜드는 순식간에 다양한 브랜드를 쏟아내며 중저가 의류시장을 만들어 휩쓸었다. 시내 중심가는 물론 동네 구석구석까지 이랜드 매장들이 파고들었다. 끝내 신발은 ‘나이스’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몸에는 짝퉁이 아닌 메이커를 떳떳이 입을 수 있었다.
‘이랜드 신화’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물론 몰랐다. 그 신화에 감춰진 눈물을.
이랜드 신화
이랜드는 밥벌이를 위한 기업이 아니었다. 이랜드는 직장이기에 앞서 신앙과 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땅’이었다. 지난해 이랜드 비정규직 해고에 맞서 홈에버 면목점에서 농성을 하다 구속된 홍윤경 이랜드일반노조 사무국장도 ‘신앙인이 가야 할 직장은 이랜드 뿐’이라고 판단했다. 이랜드보다 근로조건이 좋은 곳에 취업이 되었던 홍윤경 사무국장이 좋은 직장을 마다하고 이랜드로 간다고 하니 교수님도 고개를 갸웃거렸다고 한다.
자정이 되면 손님을 태우려고 택시기사들이 찾는 장소 중의 하나가 신촌에 있는 이랜드 본사다. 그 곳에 가면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가려는 손님들이 늘 있기 때문이다. 출근 시간은 일정해도 퇴근시간은 알 수 없는 곳. 야근이 일상이 된 곳. 이랜드의 신앙경영이 이루어낸 성과다.
이천 년 대에도 이랜드의 신화는 멈추지 않았다. 대형할인매장인 까르푸를 인수하면서 국내 유통업계의 공룡으로 자리 잡았다. 더불어 이랜드는 지난해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무시무시한 업적을 쌓았다. 노사 간 약속으로 만든 단체협약에 고용이 보장되어있던 계약직 직원을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량해고를 하여 신앙경영의 위력과 신화를 이어갔다.
신앙경영의 위력
130억 원을 십일조로 선뜻 내면서도, 한 달에 100만 원도 월급으로 구경하기 힘든 비정규직 노동자를 거리로 쫓아낼 수 있는 기업이 이랜드다.
국내 노동자들의 눈물로 쌓아올린 신화와 벌어들인 밑천으로 이랜드는 중국시장에서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중국에서 이랜드는 중저가가 아니라 고가 브랜드 정책을 쓴다. 중국 백화점 중요 매장에는 이랜드가 자리를 잡고 있다. 오는 5월에는 스위스연방은행(UBS)을 통하여 홍콩증시 상장을 하려고 한다.
이랜드와 뉴코아 노동자들이 홍콩으로 간다.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탄압으로 말살하고 소비자들인 국민들을 속이고 우롱하면서 법마저도 무시하고 있는 대표적인 악질기업이 그룹 내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이랜드 홍콩법인을 버젓이 홍콩증시에 상장한다고 하는데 이는 국제적으로 망신살 뻗치는 일(서비스연맹 기자회견문, 2008년 3월 13일)”이라며,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 없어 홍콩으로 간다.
전기세를 내지 못해 자식들이 촛불을 켜놓고 숙제를 하는 모습을 억장 무너지는 가슴으로 망연자실 바라봐야 했던 이가 이랜드 노동자다. 원정 투쟁은 경비를 만드는 일부터 쉽지가 않다. 지난 300일을 거리에서, 경찰서에서, 교도소에서 보내야 했던 노동자들에게 비행기 삯은 그나마 집회장에서 천 원짜리 김밥 한 줄로 때우던 끼니마저 포기해야 할지 모를 큰 부담이다.
원정투쟁 준비모임에서 경비가 문제가 되어 일정을 단축하는 문제가 나오기도 했다. “홍콩에 가서 잠잘 곳이 없으면 길바닥에서 자고, 식비가 없으면 굶으면 된다”는 뉴코아 노동자의 말에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이랜드 싸움을 승리하지 못하면 ‘민주노총의 깃발을 내리겠다’던 민주노총 위원장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굶으면 된다
온갖 어려움을 의지 하나로 극복하고 내일(30일) 이랜드 뉴코아 노동자는 홍콩으로 간다.
취재를 간다. 홍콩증시 상장 저지는 ‘이랜드 매출 제로’ 투쟁 이상의 중요한 의미가 있고, 이랜드 투쟁의 새로운 전환점이 예상된다, 는 특별하거나 거대하거나 하는 의미를 부여하고 가는 것은 아니다. 기삿거리가 될 거라고도 생각하지도 않는다. 언론의 눈에는 비정규보호법이 실행된 지난 해 7월처럼 중심 이슈도 아니고, 점거농성처럼 자극(?)적이지도 않다.
다만, 멕시코 칸쿤에서 자신의 배를 가른 이경해 열사가 떠올랐고, 지난 해 프랑스로 원정투쟁을 간 라파즈한라 우진산업 비정규직 노동자가 어른거렸고 스위스에서 단식투쟁을 한 테트라 팩의 정창훈 노조위원장의 핼쑥했던 얼굴이 지워지지 않아, 홍콩으로 함께 간다.
이랜드 노동자가 삼보일배를 할 때는 무릎 보호대가 되어 지켜볼 것이고, 뉴코아 노동자가 단식을 할 때는 물이 되어 타는 목마름을 또박또박 받아 적을 것이다.
*이성욱 목사님이 이번 주 토요일에 함께 동행할 것 같습니다.
같이 기도해주시고, 힘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