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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모든 가치가 경제적인 가치에 종속될 때, 인간의 행복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경제는 인간의 주인이 되고 인간은 경제의 노예가 된다. 인간과 경제의 전복된 관계가 복원되지 않으면,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할수록 불행해지고 성공할수록 더 깊은 파멸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되는 아이러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유혹하는 자가 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하였다.”

마태복음 4장 3~4절

신약성경 마태복음에 따르면, 인간이란 빵을 먹지 않으면 죽는 존재지만 빵만으로 살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인간의 행복 역시 빵을 배제하지 않으나 빵만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인간은 빵을 먹지 않으면 죽는 존재인 동시에 빵을 가득 싸안고도 무의미와 허무의 절망으로 죽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와 같은 정신적, 영적 성격을 간과하고 오직 빵 하나로 인간 생명의 완성이 가능하다는 획일화된 주장에 대해 성경은 악마의 유혹이라고 말한다.

E.F.슈마허 저 『작은 것이 아름답다 – 인간 중심의 경제를 위하여』(문예출판사, 2002)E.F.슈마허 저 『작은 것이 아름답다 – 인간 중심의 경제를 위하여』(문예출판사, 2002)

영국의 경제학자로서 또한 경제관료로서 방대한 경제 이론과 다양한 실무 경험을 두루 갖춘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E. F. Schumacher)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의 산업자본주의가 절정의 단계로 접어들어 인류의 보편적 (경제적) 풍요에 기반하여 영속적인 행복과 평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했던 1970년대 초반 『작은 것이 아름답다 – 인간 중심의 경제를 위하여』라는 저서를 출간했다. 저서의 제목과 부제 속에 이미 절정의 단계로 접어들어 최고의 성과를 구가하고 있던 20세기 산업자본주의에 대한 저자의 비판과 대안이 모두 들어있다.

저자는 비약적인 생산기술의 향상에 도취하여 생산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믿는, 언제라도 필요한 만큼의 생산이 가능하다고 믿게 된 근대인의 자신감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는 인간의 기술력으로 생산할 수 없는 대체불가능한, 재생불가능한 자연 자본을 심각하게 남용함으로써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산 문제가 이미 해결되었다고 믿고 그러한 신념에 따라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문화를 정착시켜 간다면 그것은 필경 인류가 이룩한 기술력의 진보가 인류를 파멸로 이끄는 자해적 결과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저자의 경고는 저자의 시대, 곧 1970년대에는 막연하게 들리는, 기우에 찬 경고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문화가 완벽하게 구축됨으로써 초래된 생태계의 파괴와 이로 인해 문명의 위기를 맞이한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는 저자의 경고가 이미 목전에 다다른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인류는 이러한 파국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20세기 산업자본주의의 전성기를 이룩한 근대인들은 자신들이 이룩한 생산기술력에 도취하여 원하는 만큼의 성장이 가능하다고 믿었지만, 그러한 믿음이 인류 보편의 행복이 아닌 인류 공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제 우리는 거대해지는 것에 대한 환상을 거두고 적정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거대해지는 것에 대한 환상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감각으로 보면 적정한 것은 너무 작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너무 작아 보이는 것을 적정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학이야말로 성장 일변도의 경제학으로 야기된 생태계의 파괴와 인간 문명의 파국을 피할 수 있는 영속성의 경제학이다. 하지만 거대해지는 것을 버리고 작은 것을 선택하는 그와 같은 경제학이 가능할 수 있을까?

저자는 경제학이 근대인의 모든 사고와 행위를 규정하는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하여 근대인들에게 ‘비경제적’이라는 말은 어떤 존재를 부정하는 가장 결정적인 어휘가 되었다는 것을 지적한다. 저자는 경제학의 위상이 과도하게 높은 것은 근대인의 강박이라고 본다. 경제학이 인간의 모든 사고와 행위를 규정하는 유일무이한 척도가 되면 그것은 마치 중세시대에 성경으로 물리학적인 문제를 판단하려다가 사람을 죽이기도 한 것과 동일한 오류와 악을 경제학 역시 저지를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와 같은 오류와 악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제학자는 경제학을 파생시킨 메타경제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메타경제학에 따르면 경제학은 자신의 목적과 목표를 인간에 대한 연구로부터 끌어내야 한다. 그리고 경제학은 자신의 방법론을 자연에 대한 연구로부터 도출해야 한다.

메타경제학을 도외시한 경제학은 모든 가치를 화폐적 가치, 즉 돈이 되느냐 돈이 되지 않느냐 하는 하나의 가치로 획일화시켰다. 그 결과 인간과 자연은 생명으로서의 신성함을 잃어버리고 무제한적인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제구조 속에서는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인간의 모든 경제적인 노력은 타인을 착취하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로 비화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악마적 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근대인의 삶에서 과도하게 높아진 경제학의 위상이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노예와 주인의 관계로 왜곡된 인간과 경제의 관계가 다시 인간을 위한, 인간 중심의 경제로 다시 복원되어야 한다. 모든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획일화하려는 시도를 악마의 유혹으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경제는 인간의 얼굴을 회복하게 될 것이며 인간의 행복을 위해 봉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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