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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검색을 위해 구글을, 상품검색을 위해 아마존을, 동영상 검색과 업로드를 위해 유튜브를, 사회적 소통을 위해 페이스북을 이용하고 그 과정에서 방대한 데이터와 콘텐츠가 생산되지만, 그것은 플랫폼을 제공한 회사의 소유가 되어 천문학적인 돈벌이의 재료가 된다. 플랫폼의 이용자들은 돈벌이의 원천인 데이터와 콘텐츠를 생산했으나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다. 그들은 “즐겼으나 착취당했다.” 인간의 정동을 착취하는 자본주의 시대의 노동에 대한 적절하고 새로운 정의와 자유/무료노동에 대한 보상문제를 이 책은 다루고 있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 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아가서 8장 6~7절

구약성경 아가서에 따르면 사랑이란 인간의 감정은 죽음마저 넘어서는 자기초월적 에너지인 동시에 음부같이 잔혹한 자기파괴적인 에너지이며 많은 물로도 꺼뜨릴 수 없고 홍수로도 침몰시킬 수 없는 불처럼 통제 불가능한 에너지다. 이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는 사랑을 사고, 팔 수 있는 매매의 대상으로 상정한다면, 사랑을 자본의 통제 아래 두려고 시도한다면, 그러한 인간은 멸시를 자초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정동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사랑조차 이윤 창출의 자원

그러나 사회학자 이향우는 『정동 자본주의와 자유노동의 보상』(한울아카데미, 2017)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사랑이라는 인간의 감정마저 이윤 창출의 자원으로 삼아버린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해 설명한다. 사랑이란 통제 불가능한 에너지이자 자본에 종속될 수 있다는 상상조차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것일 텐데 말이다. “정동 자본주의”라고 이름 붙여진 새로운 경제체제 하에서 달라진 노동의 개념과 보상의 문제를 다룬다. 무엇이 다른가?

기존의 경제 체제와 “정동 자본주의”는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재료와 생산 양식이 다르다. 기존의 경제 체제에서 수익 창출이 유형의 물질적 재료를 사용하고 고용된 노동력을 동원한 생산 양식으로 이루어졌다면 “정동 자본주의”에서는 흥미, 평안, 만족, 긴장, 관심, 흥분 등과 같은 인간의 몸과 마음의 활력으로 정의할 수 있는 “정동”을 이윤 창출의 재료로 사용하며 고용되지 않은 노동력을 사용하는 생산 양식을 취한다.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정동”은 인간의 감정들 가운데서도 긍정적인 감정들로서 이것이 만약 채굴 가능한 자원으로 전용될 수 있다면, 그것을 통한 수익 창출의 한계는 무한에 가까운 것일 수 있다. 문제는 과연 이와 같은 “정동”이 수익 창출의 재료가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고 또한 이와 같은 “정동”을 어떤 방식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플랫폼 기업의 이윤은 고용되지 않은 노동자의 정동노동

저자는 오늘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구글,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유튜브와 같은 대표적인 플랫폼 기업들의 예를 통해 인간의 “정동”이 어떻게 이윤 창출의 재료가 될 수 있으며 인간의 “정동”이 어떤 방식으로 관리되고 있는지, 고용되지 않은 노동력이 어떻게 이들과 같은 플랫폼 기업의 이윤 창출을 위해 복무하게 되는지 설명한다.

수억 명의 사람들은 지식검색을 위해 구글을, 상품검색을 위해 아마존을 이용한다. 그리고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거나 타인과 소통하기 위하여 또는 정치적인 목적이나 경제적인 목적을 위해 페이스북을 이용하고 관심 있는 동영상을 보기 위해, 또는 본인의 영상을 공유하기 위해 유튜브를 이용한다. 모든 서비스는 무료로 제공된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을 통해 생산되는 모든 데이터와 콘텐츠는 모두 서비스를 제공한 플랫폼 기업의 서버에 남아 그들의 소유가 된다.

오늘날 이와 같은 플랫폼 기업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지 또한 이런 기업들의 가치가 또 얼마나 치솟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기업들이 벌어들이고 있는 천문학적인 돈이 과연 무엇을 재료로 창출되고 있으며 누가 과연 이 기업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단지 부러워할 뿐이다.

여행 중 촬영된 이미지를 SNS에 올리는 개인적 행동으로 어느 회사는 이익을 얻는다. 출처: https://p1.pxfuel.com/preview/665/303/623/building-travel-hand-ca.jpg여행 중 촬영된 이미지를 SNS에 올리는 개인적 행동으로 어느 회사는 이익을 얻는다.
사진 출처 : pxfuel

저자는 이와 같은 플랫폼 기업들이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 이윤 창출이나 수익 창출이란 말을 쓰면 실감이 나지 않는다 – 사용하는 재료는 수억 명의 “정동”이라고 말한다. 지식이나 상품을 검색하고자 하는 욕구, 타인과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 타인이 만든 콘텐츠를 보고 자신이 만든 콘텐츠를 게시하고자 하는 욕구들을 인간의 “정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정동”은 그 양을 헤아릴 수 없는 데이터와 콘텐츠를 생산하는 근본적인 동력(재료)이 되는데, 인간의 욕구가 사라지지 않는 한 그 재료는 무한히 제공된다.

기업은 인간의 이러한 욕구를 해결하도록 자신이 만든 플랫폼을 무료로 제공한다. 수억 명의 이용자들은 기업이 만든 플랫폼에서 자신의 “정동”에 따라 자유롭고 즐겁게 활동하며 그러한 활동의 부산물로서 수많은 데이터와 콘텐츠가 생산된다. 플랫폼을 제공한 기업은 자신들이 관리하는 플랫폼을 통해 인간의 “정동”을 관리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인간의 “정동”을 재료(동력)로 생산된 모든 데이터와 콘텐츠를 소유하고 그것으로 상상할 수 없는 돈을 벌어들인다. 인간의 “정동”이 사라지지 않는 한, 플랫폼 기업들은 끊임없이 돈을 벌어들일 것이다.

정동노동에 대한 보상은 사회적 방식으로

이와 같은 이윤 창출 방식에서 재미있는 점은 기업은 엄청나게 돈을 벌고 있는데, 정작 고전적인 노동개념으로 포착되는 노동자가 없다는 점이다. 수억 명의 사람들이 기업의 플랫폼에서 어마어마한 데이터와 콘텐츠를 생산하고 그것으로 기업은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벌지만 정작 데이터와 콘텐츠를 생산한 사람들은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노동을 “자유/무료노동”으로 부른다. 기업이 만든 인터넷 플랫폼을 이용한 사람들은 자신의 “정동”을 따라 자발적으로 즐겼을 뿐이지만 거기에서 엄청난 이윤이 창출되는데 그 이윤은 오로지 기업이 차지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가?

저자는 “자유/무료노동”으로 발생한 막대한 이윤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그 방법이 개별적으로 이루어지기는 어렵다고 본다. 과연 누가 얼마만큼의 가치를 생산했는지 판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자유/무료노동”에 대한 보상은 개인적인 방식이 아닌 사회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그 방법으로 기본소득을 제안한다. 왜 사회적인 방식의 보상인가?

수억 명의 인간 개개인이 자신의 “정동”을 발산하고 나누는 사회적인 소통 속에서 방대한 데이터와 콘텐츠가 제작되었고 그것으로부터 천문학적인 액수의 이윤이 지속적으로 창출되고 있는 만큼 각자의 “정동”을 발산하고 나누는 사회적 소통에 참여하고 있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정동”을 발산하고 나누는 사회적 소통 자체를 노동으로 보는 새로운 개념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원해서 인터넷 플랫폼을 이용했을 뿐인데 이것을 노동이라고 볼 수 있는가? 내가 나의 “정동”에 따라 즐길 수 있도록 기업은 무료로 플랫폼을 제공해 주었는데 그 과정에서 이윤이 창출되었다고 기업에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나는 즐겼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착취당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이 올라올 수 있고 또 실제로 이 책을 읽고 나누는 독서 모임에서도 같은 질문이 제기되었다.

기본소득제 : “정동노동”에 대한 보상의 방식

그러나 저자는 앞으로 – 4차 혁명이라 불리는 시대에 – 이루어질 이윤 창출의 방식은 이처럼 인간의 “정동”을 재료로, 동력으로 이루어지는 “정동 자본주의”가 대세를 이루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정동”을 이윤 창출의 재료로, “정동”에 따른 인간의 모든 사회적 소통 그 자체를 생산적 행위, 즉 노동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인간의 “정동”을 통해 발생한 모든 이윤을 사회적 이윤으로 규정해야 하고 사회적으로 발생한 이윤에 대한 보상은 사회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기에 그 방식으로서 기본소득제의 도입을 말하는 것이다. 노동과 보상에 대한 개념에 획기적 전환이 요구된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의 “정동”을 관리하고 독점하는 기업만이 인간의 사회적 소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회적 이익의 수혜자가 될 것이다. 이는 부당하지 않은가? 앞서 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정동”은 자본의 지배와 관리 아래 놓여서는 안 되며 완벽하게 개인의 것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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